정치 이야기2013.04.19 16:19




"공짜만큼 비싼 것은 없다."

"지불되지 않은 가치는 그 유예기간 만큼의 무게추를 달고 당신에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위 문구는 살면서 느꼈던 몇 가지 격언 격의 이야기에 개인적 살을 붙여 종종 회자하곤 하는 문구입니다. 전자의 말은 보통은 "이유없는 공짜는 없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하거나 공짜라는 가치가 주는 심리적 부담과 그 효과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후자의 말은 어떤 가치의 획득에 있어서 비용을 치르지 않은 경우 당장의 부담은 느끼지 못할 수 있겠으나 언젠가 그 가치에 대한 지불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자, 신용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카드값, 혹은 대출과 관련된 비애와도 연관될 수 있는 말입니다.


보통 인간은 자신이 충분한 댓가를 지불하고 획득한 가치에 대해서는 애착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환경과 주변의 반대를 넘어 열번 이상의 구애로 얻은 사랑과 하룻밤 사랑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 다른 것은 명백하거니와 같은 물건이라도 내가 고생하고 벌어서 구입한 물건과 우연한 기회에 얻은 물건에 대한 취급은 다른 것이 보통이지요. 우리나라 속담 중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나간다." 라는 말이 이를 설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가치에 대한 투자와 노력, 그리고 그 획득된 가치에 대한 애정에 대해서는 그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것이 보통이며, 반대로 자신이 무임승차하고 있는 가치에 대해서는 큰 감흥을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개인적 관점에서 조금 더 확장해서 살펴보면, 사회의 구성원들이 누리고 있으되, 그 가치의 획득에 있어서 충분한 댓가를 치르지 아니하였거나 그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통찰이 없는 경우, 그 가치는 조금씩 조금씩 희석되어가며 이윽고 발목을 잡거나 뼈아픈 댓가를 치르게 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오늘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의 댓가를 지불하였습니까?"의 질문과 함께 바로 오늘 4월 19일, 53 번째 기념일 맞이한 '4. 19 혁명' 과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와 우리가 왜 이런 민주화 운동, 혹은 혁명을 헌법의 첫 자락에 명시하고 해당일을 기리며 회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에 관한 것들입니다.


근대 이후 우리 민족의 비극은 격변하는 동아시아 정세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여 외세에 휩쓸린 점도 있을 것이며, 왕조 체제의 몰락과 식민지 수탈과 암흑, 그리고 항일의 역사를 거쳐 독립에 이르는 동안 충분한 여유를 가질 여력이 없었던 것. 그 과정에서 기회에 능한 사람만이 온전히 자신과 가족, 그리고 세력을 온존할 수 있었고 따라서 그러한 기회주의적 태도에 대해서 비판은 하되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독립 역시 순전히 우리의 힘으로만 이룬 역사가 아니었기에 우리민족의 자결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한채로 남한은 미국의, 북한은 소련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대리전의 희생양이 되어 이후 엄청난 댓가를 치르게 되지요. 더더구나 남한은 일제 치하 기회주의자들을 청산할 제대로 된 기회를 갖지 못한 채로 그 권력구조를 그대로 이용한 통치가 지속되게 됨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그러한 갈등의 비용과 진통을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특히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선택함으로 인해서 우리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했던 민의에 의한 통치라는 개념은 사실상,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라는 인물과 자유당 정권이라는 민주주의의 적에 의해서 말살 혹은 은폐되어 버리게 됩니다. 이것 역시 이러한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도입이 시민 한 명, 한 명의 이해와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진 발전과 변혁의 역사를 통한 것이 아닌 말 그대로 근현대 국가로 나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사상의 도입절차에 가까웠기에 일반 대중이 느끼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중요성은 크지 않았고, 따라서 이에 대한 댓가는 이후 이루어진 이승만과 자유당 일당의 부정선거로 인한 장기집권 야욕으로 인한 국가의 부패로 이어지게 됩니다.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라고. 4. 19 혁명을 주도하고 참여했던 세력은 당시 이승만 정권에서 주장하던 것처럼 빨갱이나 반동세력, 불순분자가 아닌 일반 시민, 학생들이었습니다. 오래된 부당함에 맞서 일어난 숭고한 운동에 돌아온 것은 군화발과 총, 칼로 대변되는 무력탄압이었지요. 수 많은 목숨을 머금고, 부담을 느낀 이승만은 도망치 듯 권력을 이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가의 건국을 통해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도입했다면 바로 4. 19 혁명이 일어났던 이 때가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민주주의의 첫 댓가를 너무나도 아프게, 너무나도 크게 치뤘던 때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이러한 혁명으로 인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확립되었으면 좋았겠으나 이후의 역사는 쿠데타, 독재, 군부정권의 역사였지요. 그만큼 "모든 권력은 민중의 손에서, 시민의 손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명제가 얼마나 무겁고 힘든 것인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는 성장해 왔던 것은 맞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가치에 대해서 조금씩 잊어가는 순간만큼, 민주주의의 적은 그것을 쥐마냥 조심스럽고 교묘하게 갉아 내려갑니다. 특히나 이러한 무형의 가치는 우리가 단순한 가치라 치부하는 순간, 그만큼 크기가 줄어들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언젠가 지금 지불하지 않는 댓가와 관심에 대한 빚을 받으러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고, 최근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그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금 되새기고 있는 요즘입니다. 오늘 같은 날은 시간을 내어 깊게 고찰해 보는게 어떨런지요. 우리가 가진 권리와 그 권리 획득의 과정, 또한 그와 함께 하는 의무, 그리고 적어도 이러한 역사적 순간이 있었던 날들에 대해서 돌아보는 것들을 말이죠. 참정권과 공정한 선거에 대한 생각도 더불어서요.


4.19 혁명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학교를 통해서, 사회에 나와서는 방송과 신문을 통해서 너무나도 당연히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따라서 그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 다시금 언급하는 것은 동어반복인 것 같아, 사전에 등재된 내용과 과거 언론기사의 단편과 사진 정도만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지난 3.15와 4.19 혁명 50주년 기념으로 마산 MBC 에서 방영한 <누나의 3월> 이라는 드라마로 대체하고자 합니다.


<누나의 3월>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대사 중 하나는 처음과 마지막에 이어 나오는 독백의 대사가 아닐까 합니다.


 "나는 세상을 너무 몰랐어예. 진짜 몰랐어예. 자유가 뭔지도 모르고, 민주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총소리)"


3. 15 , 4. 19 혁명에 참여한 시민들이 특정 이념이나 사상에 능하고 익숙했던 이들이 아니라, 그저 부당함을 지적하던 민초였음을 알리는 한 마디이죠. 물론 이러한 극화에는 연출이라는 감독의 생각이 담기는 것과 더불어 과장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사실은 역사적 무게로 인해 묵직하게 다가오는 4.19 혁명에 보다 쉽게 접근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아 글 말미에 첨부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께서는 마지막 9/9 부분의 5 분 이후 극이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부분이라도 봐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저는 다 보시는 것을 추천하지만요.


남은 하루도 좋은 하루되시고, 늘 행복하세요.




<4.19 혁명>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


이승만 정권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하였다. 그리고 1960.3.15 제 4대 정 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선거에서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그러자 같은 날 마산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무고한 학생과 시민을 공산당으로 몰면서 고문을 가했다.


이후 1960.4.11 1차 마산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발견됨으로써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제 2차 시위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1960.4.18 고려대학교의 4천여 학생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일부가 피를 흘리며 크게 부상당했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다음날인 1960.4.19 총 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 "를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하여 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탄압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1960.4.25 독재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하였고 1960.4.26 전날에 이어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시위군중은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여 이승만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하야하였다.







<4. 19 혁명, 그날의 기록들>



- 1979. 4. 19. 동아일보 (좌) : "그날의 악몽 아직도 생생" 김주열 군의 어머니


김주열군은 19년 전 당시 마산상고 1학년의 몸으로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데모에 참가했다가 행방불명, 4월11일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체로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다. 이 사건이 불씨가 되어 민중의 분노가 다시 터졌고 결국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권 여사는 전북 남원의 넉넉한 농가에서 살고 있었으나 주열이의 죽음과 그에 충격받은 아버지의 별세로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 권 여사는 서울로 집을 옮겨 하숙을 치고 과자 도매상을 하는 등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면서 남은 세 아들을 뒷바라지해 왔다.


- 1962. 2. 6. 경향신문 (우) : 소녀의 몸으로 4.19혁명 대열에 뛰어들었다가 숨을 거둔 진영숙


진양은 4.19날 어머니 앞에 "남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는데 내가 어찌 편안히 있겠습니까. 내가 안 돌아오더라도 슬프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라는 내용의 유서까지 써놓고 뛰어나가 데모대에 뛰어들었다 미아리 고개에서 무분별하게 쏘아대는 총알에 맞고 숨진 것이다. 그의 어머니 김명옥씨는 죽은 딸의 사진을 쳐다보며 시종 눈에 손을 대고 울기만 했으며 "가슴이 메어 말을 못하겠다" 고 했다. 몸으로 4.19혁명 대열에 뛰어들었다가 숨을 거둔 진영숙





1960. 4. 14. 동아일보 : 마산 3.15 의거 김주열 열사 시신 발견 (발견일 4월 11일)


부산지방 검찰청에서는 13일 하오 4시 30분부터 11일 마산시에서 시체로 발견된 김주열 군의 검안에 착수하여 이날 하오 7시에 끝마쳤다. (중략) 김군의 눈에 박힌 그 최루탄의 형태를 보면 인위적으로 박은 것 같은 흔적이 있어 그에 대한 검찰 해명이 지극히 어려운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가 하면 죽은 시체가 바다 속에 제 발로 걸어 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바다 속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문제는 어쨌든 확실히 밝혀져야 할 문제이어서 검찰은 이 시체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하여 상당한 고민에 빠질 것 같다






- 1960. 4. 20. 동아일보 : 전 수도의 거리 뒤흔든 학생들의 노도


18일의 고대학생 데모에 뒤이어 19일에는 국립 서울대학교의 전 학생들과 성균관·동국·경기·중앙·연세·홍익 대학생 등, 약 십만 명이 대대적인 데모를 감행하여 수도 서울을 완전히 데모 분위기 속으로 휘몰아 넣었다. (중략) 경관은 본격적으로 실탄과 최루탄을 발사하여 일부 학생들이 현장에 쓰러지기 시작 이날 하오 5시경 경무대 어구부터 경찰은 데모대를 해산시키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총격을 개시. 수십 명의 사망자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부상자를 내었다.




<3. 15의 마산과 4. 19 혁명을 다룬 드라마, 누나의 3월>


<누나의 3월 1/9>



<누나의 3월 2/9>




<누나의 3월 3/9>




<누나의 3월 4/9>




<누나의 3월 5/9>




<누나의 3월 6/9>




<누나의 3월 7/9>




<누나의 3월 8/9>




<누나의 3월 9/9>



<4월은 갈아엎는 달 / 신동엽>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4월이 오면

내 가슴속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조국에도

어니 머언 심저心底,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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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르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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