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2013.04.06 18:00





아침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가 잠시 잦아드는 것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팬을 듭니다. 4월은 봄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오감으로 실감할 수 있는 달이 아닌가 합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꽃샘 추위도 지나가고 결국에는 만개할 4월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오늘 이렇게 비가 내립니다. 올 봄에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잦을 거라고 합니다. 4월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하니 얇은 여벌 겉옷이나 우산 꼭 챙기고 다니셨으면 좋겠네요.


글을 서두에 왜 이리 날씨를 고집스럽게 쓰고 있냐고 물으시는 독자분도 있으시겠지만, 저는 이러한 계절의 변화가 가리키는 것이 순환하는 우리의 삶이나 역사와도 비슷하게 맞닿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계절의 모든 순간을 즐기고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그 좋은 순간이 오기 위해서일른지..... 혹독하고, 때론 잔인하거나 불편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그리고 서슬 퍼런 비오는 날이 싫고 불편하여 바라보지 않는 다고 그 비는 오지 않았던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그 비를 맞으며 시간을 보내고, 만개할 꽃날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겠지요. 때론 그러한 사나운 비를 맞을 필요도 있고, 두 눈으로 직시하고 마음에 새겨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4월 역시 그러하지요. 4월은 여러 사건이 많이 있었던 달입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4.19 혁명과 제주 4.3 사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4월 3일에는 그 위령제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4.3 사건과 그것을 다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서 백과사전에 기록된 간략한 기술로 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으로, 일본 패망 후 한반도를 통치한 미군정에 의한 친일세력의 재등장과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남조선노동당을 중심으로 반대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이러한 4.3 사건을 다룬 영화가 최근 3월 21일에 개봉하여 독립영화로는 쉽지 않은 3만 관객을 돌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입니다. 한국영화 최초로 독립영화의 오스카라는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기도 했고, 2012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개봉관이 많지 않아 관람하기 쉽지는 않지만 충분히 볼만한 매력이 있는 영화이며, 의미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제주 사투리로 감자를 뜻하는 이 <지슬>이라는 영화의 매력으로 인해 오랜만에 글을 써내려가게 되었네요.



1. 4.3 사건을 기억하며 제주도민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 ,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광주 역시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 제주 인구의 열 명 중 하나가 희생당했던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서 제주도에는 아직까지도 제삿날이 같은 집들이 많다고들 합니다. 저 역시 장손인지라, 어렸을 때부터 보고 행해온 제사라는 문화에 많이 익숙해져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바라보는 제사의 분위기는 진행에 있어서는 엄숙하지만, 반대로 엄숙하지만도 않은 모습도 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지들이 모여 돌아가신 조상의 넋을 위로하고, 혹은 기억하며 서로를 보듬어가는 의식. 저는 제사를 이렇게 생각해왔습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위로도 목적이지만, 그로 인해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돌보는 하나의 방식이 아닌가.' 라고요.


저희 집에서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이 계시기에 할머니께서는 많이 우시기도 하지만, 결코 슬프고 무겁게만 보내지는 않습니다. 이런 점은 다른 집들도 비슷할 것 같아요. 그런데 만일 이러한 제사가 마을 단위로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아니 제주도라는 섬 하나 단위로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것도 같은 날, 모두 같은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제삿날이 돌아온다고 생각해봅시다. 서로를 위로하고 돌봐줘야 할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보통의 제사와 같을 수 있을까요. 사람이 너무나도 힘들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보내는 때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서로 위로할 기력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과 더불어 저는 집단적 우울함에 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2000년에 제주 4.3 사건에 대한 특별법이 지정되고, 노무현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의 공식사과와 2006년 4월 3일 위령제 참석도 있었지요. 이 법에 따라서 많은 이들이 희생자 유족으로 등록되고, 빨갱이로 매도되었던 고인과 유족들의 명예가 어느 정도는 회복되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이후 후속조치에서 있어서 여전히 해결은 지난하고 유족에 대한 배상의 문제 역시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 것도 현실입니다. 약 300~500 억 정도가 유족과 희생자에 대한 연금, 그리고 의료서비스를 위한 예산으로 필요한 실정이지만 지원액은 20억에 그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과거 이명박 대통령도 그러한 것처럼 이번 박근혜 대통령 역시 후보자 시절 제주도를 방문, 4.3 사건의 완전 해결을 이야기 하였지만, 정작 당선 이후에는 위령제에도 참석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너무나도 힘들 때,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 때, 그럴 때에는 옆에서 누군가 도와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 배워왔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역사적 아픔을 안은 제주도민을 위한 같은 제주도 출신 감독 오멸이 준비한 제사...... 이러한 서글픈 현실을 알리고, 또한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와 그 유족을 향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그것이 바로 영화 <지슬> 입니다. 영화는 '신위-신묘-음복-소지' 의 제사 형식을 빌려 흘러갑니다.


비록 영화는 2억 5000만원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냈다고 봅니다. 흑백영화가 가지는 나름의 영상미도 살렸으며 전문배우인 군인들의 연기도 좋고, 일반인 분들과 스텝이 연기하는 제주도민의 순박함에 웃음이 나기도, 혹은 눈물짓게 하는 장면이 흘러가는 등의 모습이 좋았습니다. 영화 도입부의 구덩이 장면에서의 소소한 웃음이나 동굴에서의 마을 주민들의 훈훈한 대화, 지슬이라는 도구에 담긴 정과 슬픔의 모습 등등. 마지막에 첨부할 예고편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영화가 그저 무겁게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중요한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줄이고 사진 몇 장으로 대신하도록 하지요. 









같은 불편한 진실을 다루는 영화라도 상업 영화가 아닌지라, <26년>이나 <남영동 1985>, <부러진 화살>과 같은 극적인 연출, 강렬한 연기, 긴장감을 기대하고 가시는 분들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만, 흑백으로 표현되는 영상에서 나타나는 주제와 상통하는 영상미와 연극을 보는 듯한 연출, 그리고 그것의 독특함이 과하지 않게 녹아나도록 한 모습. 비극적 사건을 절제하고 덤덤하게 담아내고, 순박하지만 때론 알아듣기 힘든 제주 사투리를 표준어 자막으로 보여주는 현명함 등.


보고나면 "와 재미있다!" 가 아닌 "정말 잘 만들어졌다......" 라고 작게 독백하게 되는 그러한 영화입니다. 감정이 풍부한 분들은 많이 우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슬픔이라는 단어와 감정을 마음 깊이 느끼게 하는 영화지요. 그런 살짝은 불편한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극적인 재미에 있어서는 앞에서 언급한 다른 영화들이 좋았지만, 보고 난 다음에 느끼는 애착은 <지슬>이 더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약 3만 명이 봤고, 뭐.. 여전히 일부 네티즌에 의한 네이버의 별점 테러는 진행 중입니다. 따라서 영화의 관람을 원하시는 분은 차라리 실질관객 평점이나 전문가 평점을 참고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은 더욱 많지만, 직관의 즐거움을 위해서 이만 줄이도록 하고 현실의 제주 4.3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2. 제주 4.3 사건의 배경과 흐름




1945년, 제주도에서 철수중인 일본군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지만, 해방된 조국의 현실은 녹녹치 않았습니다. 미군정 이전 중앙 집권과 지방 자치의 중간 형태로 자치가 이루어지던 잠시의 시기를 지나 우리 민족만의 정부를 세우고 싶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대가는 서글펐지요. 결국 한편으로 싸웠던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우익과 좌익, 찬탁과 반탁의 형태 등으로 이념을 위시한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격화되어 암살까지 일어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군정 시대를 맞이하게 되지요. 이후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초대 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대강 이러한 국내 상황에서 제주로 눈을 돌려봅시다. 일본군 6만의 전진 기지로 사용되던 상황이었습니다. 일본군에 의해 벌어졌을 학살이나 착취, 그리고 그에 부역했던 자들과 수탈자들. 그리고 엄청난 빈곤. 일본군이 물러간 뒤의 참상은 이로 말할 수 없었겠지요. 여느 전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전쟁이 무서운 이유는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 부상 뿐 아니라 생활기반이 파괴되고, 갈등이 조장되고, 인간을 한계 상황에 맞닥뜨리게 하여 부정적 경험과 선택을 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직후의 빈곤과 질병, 이 역시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이유 중 하나지요.


제주 역시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자원, 그리고 일제에 부역했던 군, 경의 관리자 계층이 미군정에 의해 그대로 등용되는 등, 부패와 비리, 빈곤으로 인하여 분명히 해방 후의 있어야 할 희망은 찾기 힘든 지경에 이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7년 3월 1일 제주읍 관덕정 마당에서 열린 3·1절 기념집회 중 기마경찰이 탄 말의 말굽에 구경을 나온 어린이가 치이는 일이 있었고 이를 본 주변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하기 시작.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은 시위하는 군중에게 총을 발포하여 일반주민 6명이 사망하는 ‘3·1발포사건’이 발생하였고, 이에 대항하여 남노당 제주도당에서 3.10 총파업을 전개합니다. 아마도 앞에서 언급했던 상황과 더불어 3.1 발포사건으로 인한 제주민의 불만과 분노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고, 이에 대한 참여 역시 대단했습니다. 


미군정에서는 카스티어 대령을 파견하여 이에 대한 조사에 나서지만, 이 조사의 방향이 발포한 경관에 대한 조사와 처벌, 그리고 희생자의 위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노당의 선동에 대한 분쇄로 향하게 됨으로 인하여 갈등은 격화됩니다. 무지했던 것인지, 당시의 시대상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경찰과 우익단체인 서북청년단 등이 이곳에 파견되고, 도지사 등도 외지인으로 교체됩니다.


그리고 미군정은 선언합니다.


"제주도는 붉은 섬(Red Island)이다. 제주 인구의 70%는 좌익의 동조자이다."


아...... 이 선언에 담긴 인식이 당시 미군정이 제주도를 바라보는 현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있었기에 당시 제주도 인구 28만 여명 중 알려진 사상자 3만명을 초래했던 제주 4.3 사건이라는 비극이 일어났던 것이겠지요. 이 와중에는 당시의 사나웠던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더불어 질병과도 같이 취급되었던 공산주의자의 전파, 그리고 하지 중장을 비롯한 미군정의 몰이해적 태도도 한 몫 했습니다. 물론 이승만을 빼놓아서도 안되겠지요.


1947년 3월 10일을 기점으로 한 총파업에 대응하여 시작되었던 검거작전으로 이틀 만에 200명이 체포, 약 2500 명에 이르는 구금과 고문이 있었고,  이로 인해 수세에 몰린 남노당은 이듬해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무장대를 조직 제주도내 12개 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서북청년단의 무력 탄압을 물리라는 것, 그리고 남한단독 정부 수립이 아닌 통일정부를 세우자는 것. 이 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승만 측에 힘이 기울기 시작한 상황이었고, 미군정 측에서도 남한단독 정부 수립 쪽으로 결론이 내려져가는 상황에서 이 주장이 택도 없었고, 중간에 4.28 협상으로 인하여 진화가 될 뻔 하지만, 우익청년단체에서 일으킨 '오라리 방화사건'으로 인해 무산됩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사건은 《제주도의 메이데이 May Day on Cheju-do》라는 기록영화를 통해 무장대의 소행으로 둔갑되어 선전에 이용됩니다. 결국 해결의 고삐를 놓친 제주 4.3 사건은 장기화되게 되지요.




1948년 중산간지대로 피신한 주민들



그리고 48년 8월 15일 남한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에는 공산주의 정부가 세워지게 되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제주도의 이러한 현실을 정권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 10월 11일에 국군 증파, 11월 17일에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이때부터의 진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중산간 마을의 95% 가 전소,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이로 인해 2만에 달하는 중산간 마을 주민의 일부가 계엄군에 맞서 무장대에 합류하게 되지요.


잠시 영화 이야기로 빠지자면 영화에서는 추워하는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옵니다. 산간이라 4월에도 추웠으려니 하며 넘어가는 관객도 있지만, 이것에 대해 의야 해하는 관객도 있었겠지요. 영화는 그러한 부분까지 자세히 다뤄주지 않습니다만, 이런 장기화된 사태와 이후 이승만의 계엄령 시기를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슬이라는 영화가 영리하게 느껴지면서도 아쉬운 점 중 하나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적인 갈등의 부분은 말끔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배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나치게 정치적인 면을 배제하면서도 제주 4.3 사건의 비극성을 알리고, 또한 그에 참여해야 했던 군인들의 인간다운 모습 또한 단편적으로 담아내어 이 사건이 우리 모두의 비극이었음을 말하고 있지요. 그럼 영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다시 역사로 돌아가 봅시다.






제주 4.3 사건 당시를 담은 사진들



당시 군경은 위에서 언급한 대살(대신 죽인다) 이라 불리는 행위를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없는 경우에 도피자 가족으로 분류하여 부모와 형제자매를 대신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북촌사건이라 불리는 한 마을의 주민 400 여명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총살시킨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무장대가 산에 숨어 들었기 때문에 군경에서는 무장대에 동조하지 않는 주민들을 구분하기 위해 소개령을 통해 바닷가로 내몰았습니다.


단순히 공산주의자들을 구별하겠다는 발상을 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전파가 될리도 없었고, 또한 대살 등으로 인해 가족 모두가 오지 않은 경우 도피자라 여겨 가족을 죽였기에 난리통에 흩어지거나, 집안의 청년이 오인받아 죽는 등으로 대살의 위기에 처하는 등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제주도민은 동굴 등으로 숨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바닷가에 가도 죽인다더라'는 말이 나오는 장면에서 그러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지요. 게다가 자신이 살던 터전이 전소되는 등 모든 삶의 기반을 빼앗기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주 4.3 사진전에 나왔던 사진 중 2장입니다. 첫 번째 사진은 너분숭이로 북촌리 학살사건이 발생한 곳의 사진이고, 함덕주둔 제2연대 군인들에 의해 북촌리 주민들이 총살당한 너분숭이 학살터의 애기무덤이 보입니다. 두 번째 유골 사진은 다랑쉬굴에서 발견된 유해의 사진인데, 토벌대가 동굴에 숨은 주민을 불을 피워 숨지게 했던 곳이라고 하더군요. 영화에도 이것과 비슷한 장면이 그려져 있어 당시 상황의 잔혹감을 알게 해줍니다. 비록 그것을 승화적 표현과 더불어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말이죠.





제주 4.3 사진전에 출품되었던 사진 2점



최초 350명의 무장대에 대한 진압으로 시작한 사건이 현명하지 못한 선택과 탄압, 그리고 살해로 인하여 사건을 키우고, 그와 관련이 없던 민간인을 희생자로 끌어들여 무력진압했던 사건, 그것이 바로 제주 4.3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룬 영화가 바로 지슬 이지요.  



3. 마치며 


영화를 보고 가장 많이 들었던 감정은 슬픔, 생각은 아쉬움이었습니다. 이념적 대립이야 그 당시 사회상에 있어서 격렬했던 것이 사실이고, 타협점을 찾아가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으며, 남노당 제주도당의 활동에 대해서 조속한 해결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혹여 맞았다고 하더라도, 그 방법에 있어서 지극히 민주적인 방식에 의한 사고, 인간적인 사고를 조금이라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슬픔을 곱씹게 되더군요.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한 민족의 슬픔과 분단의 비극 한 잔을 더해서요.


지금이야 여러 가지 이데올로기를 비교적 쉽게 접하고, 그와 더불어 현실적인 결과를 통하여, 그리고 교육에 의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알고 체험하며 소중하게 여기고 있지만, 당시의 일반 주민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체득화된 개념이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한 이념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해시키고, 궁핍했던 삶의 개선을 도와 우월성을 보여줌으로 넘어가야 하는 수고가 힘들고 급박하다 생각되더라도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저 공산주의자들을 죽이겠다는 그 증오에 가까운 매카시즘, 혹은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말이죠.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빠르진 않아 때론 효율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충분히 배제할 시간을 얻고 그것으로 발전적인 방향으로 키를 조정하며 나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현실은 영화보다 더욱 비극적이고 서글픈 법이고, 이 영화는 그 법칙을 필요이상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기 위해 찾아봤던 기사와 자료, 책들, 그리고 사진을 돌아보며 슬픈 마음과 더불어 우리가 잊지 않고 있음을, 그리고 그 슬픔이 단지 슬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비극을 겪어낸 이상,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더불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더구나 제주 4.3 사건 피해자에 대한 피해배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일부 사람들의 그들에 대한 몰이해적 태도가 여전한 현실 역시 차차 개선해 나가야겠지요. 일개 시민으로서야 크게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의식의 공유로부터 모든 것은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불편한 진실도 돌아보고, 돌봐야 할 때가 있는데 제주 4.3 사건 역시 그러한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 4.3 사건을 기억하며 제주도민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 ,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의 리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상이 깊은 영화였기에 그 느낌을 독자분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조금은 긴 이야기를 늘어놓았네요. 혹시 기회가 되시거든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비가 그쳤었는데, 다시 비가 조금씩 더 내리네요. 남은 주말 감기 조심하시고, 즐겁게 보내시길!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예고편


 

이어도사나, 제주인의 삶 다룬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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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르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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